비비안웨스트우드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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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제로본드 조회 29회 작성일 2021-09-14 19:59:5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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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분만에 알아보는 비비안 웨스트우드에 대한 11가지 사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30대 초반이 되어서야 현재의 직업인 패션 쪽에서 일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늦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세상에 늦다는 거는 없습니다. 모두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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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http://audionautix.com/

[디자이너 알고 입자!] 펑크의 여왕 그녀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영국 패션사에서 이 인물을 빼놓고 패션을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이 인물은 파격적인 펑크 패션의 선두주자입니다.

하지만 펑크 패션과 정반대되는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패션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 입니다.
비비안 웨스트 우드는 1941년 4월 8일 영국에서 태어납니다.

그녀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당시 면화 산업 중심지 였던

영국 더비셔의 작은 마을 글로솝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게 됩니다.

당시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나는 미술관이 무엇인지 몰랐다. 나는 책을 보지도 않았고, 극장에

가본 적이 없다”

라고 이야기하며 당시 청소년기엔 예술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이후 17세의 나이가 되면서 비비안의 가족들은 영국 해로우 지역으로 이사를 갔으며

이사를 간 이후 해로우 아트 스쿨에 잠시 수업을 듣기도 했으나

당시 비비안 웨스트 우드는 “ 예술가는 너무 배고픈 직업이야, 나는 안정적인 생활을

해야겠어” “나는 너무 평범해” 라고 하며 예술 학교를 그만두고

지역 공장에서 일을 하며 사범 학교로

진학해 초등학교 교사가 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재능과 끼는 숨길 수 없었던 것 이었을까요?

자신을 꾸미기를 좋아하고 손재주가 좋았던 학생이기에

유행하는 의류들을 직접 따라하며 만들기도 했으며 계속 옷을 좋아하고

즐겼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안정적인 직업이 최고라 생각하며

패션디자이너로 전향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었죠.

시간이 흘러 1962년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데릭 웨스트우드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고 아들 벤자민을 낳은 후 평범한 나날들을 보내게 됩니다.

하지만 1965년 이 한명의 남자를 만나게 되면서 초등학교 교사로 만족하며

살던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인생은 송두리째 변하게 됩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인생을 바꾼 남자의 이름은 말콤 맥라렌

말콤 맥라렌을 알아보자면

그는 소위 말하는 반항아 였습니다. 특히 록큰롤 정신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당시 기성 세대들의 문화를 비웃으며 성과 마약, 아방가르드 미학에 심취 했던

트러블 메이커 였습니다.

이 남자를 만나며 비비안 웨스트 우드는 그의 반항심과 그의 성향에

물들으면서 그녀가 가지고 있던 반항적 기질을 맥라렌이 모두 끄집어 내 주었던 것이죠

그렇게 데릭 웨스트우드와 이혼을 하게 되고

말콤 맥라렌과 커플이 되게 되었고, 이후 1971년 그 둘은 런던 킹스로드에 첫번째 부티크

‘let it rock’ 을 열게 됩니다.

1970년대 복식은 석유 파동을 계기로 세계 경제가 매우 침체 되어 있었고,

‘소비가 미덕’ 이었던 시대에서 ‘절약이 미덕’ 인 시대로 바뀌었고

경제 불황기와 근검 절약의 시대는 영국 런던의 젊은이들에게

순수한 펑크 문화를 만들어내게 했으며

그에 따라 펑크패션은 1970년대 런던에 유행하게 되었던 것이었죠

펑크 패션에 대해 조금 알아보면

펑크는 속어로 ‘풋나기, 시시한,쓸모없는’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펑크 패션은 굉장히 반항적이고 공격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당시 펑크는 검은 의류에, 색색깔로 염색한 머리, 검정 눈, 검은 입술 , 화장, 검은 가죽 의류

검은 글씨의 깃발 등 검은 색을 활용해 죽음, 절망, 공포 , 공허를 표현하여

허무주의, 히스테리, 폭력 등을 극적으로 나타내었습니다.

현대에 펑크패션과 거의 동일합니다

본론으로 돌아와

이후 그 둘은 가게 이름을 계속 변화 시켰고,

바이커의 가죽 재킷 슬로건에서 딴

‘살기엔 너무 타락했고, 죽기엔 너무 이르다”로 바꾸었고

(TOO FAST TO LIVE TOO YOUNG TO DIE)

이 문구는 지드래곤의 타투 문구 이기도 합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옷을 협찬하며 전 세계 펑크 열풍을 이끄는 장본인이 되게

됩니다.

그렇게 1981년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이름을 걸고 탄생한 첫 컬렉션의

테마는 해적, 그녀는 역사적인 코드와 펑크의 문화를 섞어서 표현하고

싶어 했기에 해적은 유럽 역사의 한 부분, 그들의 범죄 행위를 반항으로

표현해 역사와 반항의 절묘한 만남으로 첫 컬렉션을 채웠으며

첫 런웨이 음악은 말콤 맥라렌이 제작해주게 되며

첫 컬렉션을 성공적으로 마치게 됩니다.

이후 여러 역사와 반항 문화를 섞어 다양한 패션 컬렉션을 선보입니다.

1987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2세로 부터 영감을 받은 해리스 트위드 컬렉션,

1990년대에는 고급 의상에 대한 흥미에 빠져 영국 모직과

스코틀랜드에서 만들어진 타탄 직물을 활용한 의류들을

선보이게 됐고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트위드와 타탄은 시그니처가 되게 됩니다.

비비안 웨스트 우드는 현재 골드 라벨, 레드 라벨, 비비안 웨스트우드 맨,앵글로 마니아 바이 비비안 웨스트우드

로 구성된 4개의 라인을 선보이고 있으며

골드라벨은 이탈리아에서 생산되는 오뜨꾸띄르 라인,

레드라벨은 골드라벨보다 캐주얼하면서 상업적인 디자인,

비비안 웨스트우드 맨 1996년 런칭한 남성복 라인

앵글로 매니아는 1998년 출시된 캐주얼 의류 라인입니다.

또한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영국을 세계에 알린 공으로 기사 훈장을 수여받았습니다.

마지막으로 패션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나이가 거의 여든 가까이 되어가지만 패션에 대한 욕망과 열정은

식지 않으며 자신의 신념과 자신의 반항기를 표출하며

오렌지색의 머리를하며 주류문화를 거부 하고

새로운 미래를 찾고자 하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패션디자이너 입니다.

요즘 아이돌 패션 필수템?! 비비안웨스트우드 악세사리 추천 | 트와이스 나연, 블랙핑크 지수, 소녀시대 태연 목걸이

#비비안웨스트우드 #비비안웨스트우드목걸이 #악세사리추천

안녕하세요, 여러분! 김습습입니다~!
이번에는 요즘 아이돌 필수템인 비비안웨스트우드 악세사리 소개와 추천을 해보았어요!
재밌게 봐주셨으면 좋겠고, 다음에 또 보고 싶은 영상이 있으시면 댓글에 남겨주세요!
그럼 오늘 영상도 이렇게 보러와주셔서 감사드려요
남은 주말도 즐겁게 보내시길 바라요 ✨✨❤️❤️
사랑합니다 ~!~!~!

ps. 질문이 많을 것 같은데, 컬러렌즈는 오렌즈의 스칸디 아쿠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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